[스크랩] 엔트로피(Entropy)
엔트로피(Entropy)
엔트로피는 제 2열역학 법칙에서 나오는 말이다. 우주의 모든 것은 더운 것으로부터 찬 것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즉 열 에너지는 높은 곳으로부터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뜻이다.
엔트로피를 다른 표현을 써서 설명한다면, 우주의 모든 것은 질서로부터 무질서로 향하여 간다는 뜻이다.
엔트로피의 다른 표현으로는 시간에는 방향이 있으며, 이 방향을 거슬러 가는 길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잘 지은 집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허물어지는 반면에, 집 지을 모든 재료를 아무리 확보하고 기다려 보았자 그 재료들이 모여서 집으로 될 가능성은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인간도 태어난 이상 죽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엔트로피 때문이다. 즉 태어날 때에는 질서 속에 있었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점점 무질서가 이기는 상태로 되어 가는 노화현상이 생기다가 결국은 죽을 수밖에는 없게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노화방지란 부질없는 짓이고 더욱이 젊어지는 어떤 약이나 기적적인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엔트로피를 거역하는 처사이기 때문인 것이다. 엔트로피는 우주의 모든 현상에 해당되는 가장 보편적인 자연법칙이기 때문에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될 수밖에는 없게된다. 다시 말한다면, 노화현상은 자연현상이라는 것이다.
많은 노인학 학자들이 엔트로피 현상에 가담해서 늙어 가는 것을 엔트로피로 풀어가고 있다. 이는 마치 자동차를 오래 동안 타고 다니다보면, 차가 점점 낡아갈 수밖에는 없고 언제인가는 그 차를 버려야 하는 지경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얼굴에 생기는 주름살이 그렇고, 늙어가면서 키가 줄어드는 것이 그렇고, 심장과 폐의 기능이 전과 같지 않은 것을 보아도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리 유리기에 잘 대비하더라도 결국은 유리기의 산화작용을 막을 수는 없게되고 결과적으로 사람은 각종 염증이 생기면서 늙어지는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물리적인 법칙이 인간의 생리작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일단의 생리학자들은 엔트로피를 인간의 노화현상에 대비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엔트로피란 갇혀진 상태에만 적용되는 물리법칙이지, 열려 있으면서 외부로부터 에너지가 공급되는 상태에서는 엔트로피의 법칙이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오래된 집이라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수선해서 쓰게되면 거의 무한정 집을 좋게 유지할 수 있게된다고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몸도 외부로부터 계속적인 에너지가 공급되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인간의 생리작용에는 엔트로피라는 물리학적 법칙을 적용시킬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을 늙게 만드는 여러 가지의 원인들은 엔트로피로 설명되지 않는 생물학적 현상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엔트로피를 인간의 노화에는 적용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인간의 몸은 최소한 어느 정도 만큼은 다시 젊음을 되찾을 수 있게 될 수 있다고 믿고있다.
시간 그 자체를 알기는 어려우나 시간이 흐르면서 초래하는 변화를 보면 시간이 흘렀음을 알 수 있고, 또한 시간이 어떤 변화를 초래했는지 알 수 있게된다.
중국의 역(易)은 변화란 뜻이고 변화란 시간이 흐르면 온다는 뜻이다. 역이란 바로 이런 시간과 변화 사이에 어떤 법칙이 있고, 이를 인간사에 적용해 보면서 인간사를 풀어보려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엔트로피는 시간의 개념이다. 시간이 흘렀으니 늙는 것은 당연하다. 흐르는 강물을 되돌릴 수 없듯이 이미 온 변화는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변화의 속도는 조절할 수 있다. 속도는 거리를 시간으로 나눈 것이다. 즉 120마일을 2시간 걸려서 갈 수 있는 속도는 시속 60마일이다. 그러나 120마일을 3시간에 간다면 그 속도는 40마일로 줄어든다.
인간의 한계수명을 120년으로 칠 때 그 한계수명에 빨리 도달하기 위해 달려 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속도를 줄이면 된다. 음식을 잘 골라서 섭취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에 대한 마땅한 대책을 세우면서 이를 실천하고, 적당한 영양 보충제나 보조 식품 제들을 복용하면서 살아가는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온 변화를 없애겠다는 자연법칙에 벗어나려는 노력보다는 자연법칙과 같이 가는 노력을 하려는 개인의 의지가 있다는 것은 자연과 같이 간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의 수명은 시간과 속도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이해를 할 때 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생활습성은 피하면서 필요이상으로 빠르게 노화를 재촉하는 생활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오래 살아서 무엇을 할 것인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그들의 선택이기 때문에 아무도 탓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수명과 노화의 속도는 생활에 대한 개념의 차이로부터 온다고 볼 수 있다.
엔트로피에서도 시간의 방향은 바꿀 수 없지만, 흐르는 시간의 속도는 조절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엔트로피 법 :
열역학 제 1법칙은 이 세상의 모든 에너지는 불변한다는 법이고, 열 역학 제 2법칙은 에너지란 높은 곳으로부터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엔트로피가 생긴다는 법이다.
이 두 가지 법을 하나로 묶는다면 다음과 같은 짧은 문장이 될 것이다.
우주에 있는 모든 에너지의 양은 항상 같고, 전체적으로 엔트로피는 계속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열역학 제 1법칙은 에너지란 새로 생길 수도 없고 또한 있던 에너지가 없어지지도 않지만, 에너지는 한 형태로부터 다른 형태를 취하면서 계속적으로 존재하게 된다는 뜻이다.
예를 든다면, 자동차는 가솔린이 타면서 생긴 에너지에 의해서 굴러가게 되는데, 움직여 간거리만큼의 에너지와 함께 이때 발생한 자동차 매연이나, 엔진이나 차체에 생기는 온도 등, 모든 것을 합친 전체의 에너지 소모량은 애초에 가솔린이 갖고있던 에너지 양과 비교해 볼 때 아무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란 아무도 새로 만들지 못한다는 철칙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법칙에 도전해서 에너지를 새로 만들려는 노력을 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한 에너지 형태로부터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는 만들 수는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 크기나 모양이나 상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모두 에너지로부터 생긴 것이다. 사람, 빌딩, 나무, 짐승 등등 모든 것은 전부 에너지가 그 형태만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무나 짐승이 죽더라도 그 안에 있던 에너지는 없어지지 않고 또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당신이 들여 마신 공기는 언제인가는 당신의 조상도 들여 마신 것이라는 것이다.
열역학 제 1법칙만 있다면, 한 형태의 에너지를 계속해서 반복해 쓸 수 있게될 것이다. 그러나 가솔린을 한번 쓰고 나면, 운동량, 마찰로 인한 열과 함께 매연이라는 찌꺼기가 남게된다. 즉, 한번 쓰기 시작한 한 형태의 에너지는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계속적으로 줄어들면서 쌓이는 엔트로피는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 열역학 제 2법칙인 것이다.(여기서 쌓이는 쓰레기를 엔트로피로 이해하면 된다)
엔트로피란 용어는 독일의 루돌프 크라우씨우스(Rudolf Clausius)라는 물리학자가 만들어 낸 바 있다.
엔트로피가 늘어나면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줄어들게 되다가 어느 시점을 지나게 되면 에너지는 없어지고 엔트로피의 양이 최고 치에 다다르게 된다.
클라우씨우스의 또 한 가지의 공로는 다음과 같은 짧은 문장에 요약되어 엔트로피를 설명한 것이다. 세상에서 엔트로피는 항상 그 최고치를 향해서 나아간다. 즉 세상은 항상 정리 정돈된 상태로부터 흐트러진 상태로 가는 한 방향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책상 위를 보면 된다. 시간이 지나게되면, 책상은 점점 어지러워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때 외부의 힘이 가해지면 정리된 책상이 그대로 보존된다. 즉, 외부로부터의 에너지가 계속적으로 공급되면, 평형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된다. 그러나 책상 위의 상태는 그대로 보존되었더라도, 책상을 정리한 사람의 엔트로피는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볼 때의 엔트로피는 늘어난 상태가 된다.
엔트로피를 시간의 화살촉이라고 부른 사람이 있다. 이 말은 시간이란 오직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데 그 방향은 엔트로피가 점점 쌓여 가는 방향이라는 것이다. 엔트로피 법칙을 믿는다면, 시간이란 한 방향으로밖에는 흐를 수 없게되어 있음을 믿을 수밖에는 없게된다.
그러나 우주를 운행하는 다른 또 하나의 설명인 회전 설이 있다. 현재의 빅뱅은 수없이 많이 반복되는 빅뱅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즉 시간에 일정한 방향은 없고 다만 시간이란 회전이기 때문에 한 방향으로의 시간진행은 없다는 것이다.
전자는 기독교적인 시간 관으로 시작과 끝이 분명히 있고 그 시간이 흐르는 방향은 한 방향밖에는 없다는 것이고,
후자는 불교식 시간 관으로 회전하는 시간은 전생과 이생 그리고 내생이 있다는 윤회설을 설명하는 시간 관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교식 시간 관도 무작정 회전하는 것이 아니고 그 회전도 어떤 방향을 향하고는 있다는 것이다. 크게 볼 때 회전식 시간 관도 결국은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시간 관과 같이 가는 엔트로피가 쌓여간다는 설명이 가능하게 된다.
엔트로피는 작게는 성냥을 그을 때 불꽃과 함께 발생하는 엔트로피와, 크게는 우주가 운행할 때 발행하는 우주적인 엔트로피가 생기는 것과 같이 온 세상의 모든 것에 다 해당되는 법칙이 엔트로피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정설은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엔트로피의 시간법칙에 그 근거를 두고있다. 반면에 인간 의지설도 엔트로피의 법칙에 그 근거를 두고는 있다.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에너지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생기는 엔트로피가 쌓이는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 모두 엔트로피 법칙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즉, 예정설이나 인간 의지설도 모두 엔트로피 법칙에 의해서 설명할 수 있는 반면에 두 가지 설 모두 엔트로피 법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예정설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시간의 엔트로피 법칙이고 인간 의지설은 시간의 흐르는 속도는 본인이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엔트로피의 법칙 속에는 속도에 관한 제약이 없다. 이 세상에서 인간들이 하는 모든 것은 엔트로피가 쌓이는 속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어있다. 엔트로피가 안 생기게는 할 수 없지만 생기는 엔트로피가 얼마나 빨리 또는 천천히 생기는지에 대하여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하는 존재가 결국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정설과 인간 의지설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 간의 보완관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어떤 하나만 갖고는 전체를 설명할 수 없고 두 가지가 다 있어야 전체를 설명하게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된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에너지에 관한 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에 의하면, 세상의 끝이 오는 것도 확실하다. 다만 그 시기를 모른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상 끝을 향하는 속도조절은 인간들이 할 수 있는데 현재 나타난 모든 현상에 의하면, 인간들의 행위가 세상 끝을 재촉하고 있는 것만은 거의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는 수많은 증거들이 있다. 가장 비근한 예를 든다면, 현재 전 세계에서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있다는 확실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게 알 수 있다.
인류의 역사는 되 쓸 수 없는 에너지를 근간으로 세워진 문명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런 에너지가 다 없어지고 난 다음을 상상해볼 때, 인류는 말세를 맞이한 상태가 될 것이고, 또한 한정된 에너지가 바닥나고 그 동안 써 온 에너지의 끝 산물인 각종 쓰레기와 환경오염상태가 쌓여간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게된다.
그러나 더 심각한 사실은 이런 사실에 눈을 가리고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려는 심한 경쟁에 돌입해 있는 인간세계를 보면 세상 끝이란 분명하게 온다는 사실이 더 확실하게 들어 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엔트로피를 쓰레기 또는 환경오염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왜냐하면 에너지는 엔트로피라는 종착지점을 향해서 쉬지 않고 진행해 가고있기 때문이다
생명현상과 엔트로피 법칙 :
한 생명이 그 생명을 유지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에너지 공급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에너지 공급이 있을지라도 이로부터 쌓이는 엔트로피는 피해갈 수 없게된다. 에너지가 공급되면 의당히 엔트로피가 쌓이게 된다. 이 말은 생명현상이 있게되면 이로부터 노폐물이 나오게 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때 노폐물에 대한 처리가 잘 안되면 그 생명체는 병이 들거나 아니면 생명현상이 끝 날 수밖에는 없게된다. 결국 병이 들게되고 노화현상도 오게 되면서 한 생명체가 죽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안목으로 볼 때 이 생명체가 생존하고 있는 주변환경에 쌓인 엔트로피가 그 생명체의 존재를 부인할 정도가 되면, 이런 환경으로부터 벗어나거나 또는 그 생명체에 새로운 변화가 오지 않게 되면 그 생명체는 더 이상 자손을 남길 수 없게되고 결과적으로 그 종(種, species)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없어지게 될 수밖에는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큰 주변환경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맞추어 내 자신을 변화시켜 나아갈 수 있는 생명체만 살아남게 된다. 이를 두고 적자생존이라고 설명하면서 진화라는 설명이 있게된 것이다.
즉, 진화는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도입할 때 과학적인 뒷받침이 되면서 하나의 정착된 과학으로 될 때 아무런 이론이 있을 수 없게된다. 해롤드 불름(Harold Bloom)은 시간의 화살 그리고 진화 (Time`s Arrow and Evolution)라는 저서를 통해서, 한 생명체 안에 발생한 작은 엔트로피와 커다란 우주적인 엔트로피의 증가가 합쳐진 것이라고 진화를 설명하고 있을 정도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어느 선까지는 주변환경으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해가면서 살아가는데, 이때 어느 정도까지는 쌓여 가는 엔트로피의 방향과 역류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된다. 이것이 바로 생명현상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의 최종적인 에너지원은 태양이 된다. 모든 동물은 물론 식물 그리고 미생물들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태양으로부터의 에너지를 받아먹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을 노벨상 수상 물리학자인 어윈 슈러딩거(Erwin Schroding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의 생명체는 주변환경으로부터 음성적인 엔트로피(negative entropy)를 빨아들여 질서를 잡아가고 있다. 이 말은 생명체는 외부로부터의 에너지를 받아들여야 그 정상상태(steady state)를 이루어 갈 수 있다는 말과 같은 뜻을 갖고있다. 따라서 한 생명체가 죽게되면 그 동안 쌓여 온 엔트로피가 외부로 발산되는 과정을 겪게된다. 몸이 분해되면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생명현상과 엔트로피를 설명하는 예로 먹이사슬을 들 수 있다. 먹이사슬은 위로 올라 갈수록 엔트로피가 더 쌓이게 된다. 먹이사슬 중 낮은 위치에 있는 생명체일수록 쌓여있는 엔트로피의 양이 적다. 그러나 먹이사슬 중 높게 있는 생명체들은 낮은 먹이사슬들을 잡아서 먹어야 살게되는데, 이는 결국 낮은 먹이사슬의 생명체가 그 생명현상을 유지하면서 쓰고 남아 축적된 에너지인 몸체를 먹게되는 것이다. 따라서 높은 먹이사슬의 생명체들은 훨씬 더 많이 축적된 에너지(낮은 엔트로피)를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이 내용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생명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축적된 혼란(chaos, 에너지의 흐트러짐, 생명을 잃은)을 섭취해야 한다는 이해가 가능하며, 이 말은 더 큰 에너지(따라서 낮은 엔트로피)를 소비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등 동물이나 식물은 엔트로피가 높은(따라서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낮은) 환경 속에서도 쉽게 살아갈 수 있는 반면에 고등 동물이나 식물은 엔트로피가 낮은(따라서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높은) 환경이 필요하게 된다.
모든 생명체들은 주어진 환경과 상태에 맞는 효과적인 에너지에 대한 흡수 동화 및 분포체계를 갖고 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흡수한 에너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처리해야 경제적인 것이다. 그런데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같이 살아 가야하는 다른 종류의 생명체들과 경쟁을 벌려야 하는 경우가 필연적으로 생기게된다. 이런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있는 생명체는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게되겠지만, 이런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생명체는 도태 당하게 될 가능성이 늘어나게 된다. 주어진 에너지를 얼마나 잘 쓸 수 있는지 여부가 한 생명체의 번영과 도태의 분기점이 되는 것이다.
식물들에게 있는 뿌리와 잎을 통한 영양분 섭취 및 동화라는 효과적인 장치가 있고, 동물들에게 있는 냄새, 시각, 청각, 미각, 촉각 등을 통한 모든 감각기관들은 외부로부터의 에너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분별해서 흡수하기 위한 장치들이라고 할 수 있다.
주어진 환경으로부터 얼마나 잘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또한 쌓이는 엔트로피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방출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서 한 생명체가 번영하고 또 도태 당하게 되는지의 여부가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전제 아래 인간은 과연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에너지 분포체계를 갖고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이제 자연 그대로를 상대해서 살아가는 생명체이기보다는 집약된 에너지를 쓰면서 살아가는 생활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중이다. 도시에 살고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된다. 도시에는 최소한의 자연만 있고 대부분은 인공적인 구조물로 꽉 차있다. 그런데 이 구조물들을 보면, 거의가 다 집약된 에너지를 쓰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져있다. 고대인들의 생활구조와 비교해 볼 때 많은 차이가 있다.
고대인들은 집약된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이고 열악한 환경 아래에서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집약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현대인들은 집약된 에너지가 있는 도시로 몰리게 되었고, 고대인들이 살던 열악한 환경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생활양식에 익숙한 생활을 해 오고있는 중이다.
현대인들의 생활양식을 보면, 집약된 에너지로부터 나오게 되는 필연적인 엔트로피의 축적(쓰레기와 환경오염)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전혀 없어 보인다. 현대인들에게 많이 발생하는 각종 퇴행성 성인병들은 거의 모두 이런 생활양식으로부터 온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여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인류의 집약된 에너지가 패턴이 된 생활양식은 이제 200년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 전에 있었던 생활양식과는 완전히 틀린 생활양식을 갖게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몸 구조 자체는 아직도 옛날 그대로인 것이다. 아직도 낮은 에너지 상태에서 살아오던 유전인자와 모든 몸의 구조와 기능이 옛날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인간 몸의 구조와 기능으로는 집약된 에너지 아래의 생활양식과는 잘 안 맞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이런 심각한 문제는 시작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이미 이런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고 또한 한창 진행되어 있는 상태를 바꿀만한 안목과 의지가 전혀 없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심각한 문제가 얼마나 있으면 그 끝이 날 것인지에 대하여는 아무도 모른다.
현대문명과 이 속에서 살고있는 현대인들은 다만 눈을 가리고 있으면서, 끝이란 있을 수 없다는 태도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옛날식 농사를 지어서 에너지 공급을 받던 시기에는 1 칼로리의 인간 노동량으로 10칼로리의 식물수확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 농법을 써서 농사를 짓는 경우에는 1칼로리의 식물을 얻기 위해서는 10칼로리의 에너지가 소용된다고 한다. 트랙터에 들어가는 중유, 석유로부터 오는 비료, 살충제 및 곰팡이 약 등을 계산해야 하고, 산출된 식물을 운송해서 식품가공 공장으로 보내게 되면, 여기서도 전기라는 에너지를 써서 식품에 대한 각종 가공을 하게된다.
식품가공 과정 중 포장이 아주 중요한 단계인데 여기에도 에너지가 들어가야 한다. 다음에는 또 다시 운송과정을 거쳐 창고에 보관되었다가 도매 및 소매점으로 또 다시 옮겨가야 하는 등 현대 농 법과 식품유통과정은 에너지가 집약적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100 배 이상 차이가 나는 저 엔트로피 농법으로부터 고 엔트로피 농법으로 변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인 것이다.
한정된 에너지 자원 :
언젠가는 집약된 에너지의 생활양식에는 끝이 오게될 수밖에 없다. 되 쓸 수 없는 에너지가 고갈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이 확실한데 아직도 되 쓸 수 있는 에너지인 햇볕(바람, 간만의 차 및 파도 등을 써서 얻는 에너지도 결국은 해 및 햇볕으로부터 오는 것이다)을 써서 그 동안 무한정으로 써 오던 되 쓸 수 없는 에너지를 대체시킬 수 있는 길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핵에너지를 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은 핵발전소가 안고있는 폭발가능성과 함께 핵 발전 후에 나오는 핵 쓰레기를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과정이 마련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핵 쓰레기의 반감기가 수 만년이나 되기 때문에 핵 쓰레기를 안전하게 처리보관 할 방법이 없다. 또한 방사성 동위원소의 양도 제한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핵을 통해서 얻는 에너지도 결국은 한정된 범위 내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에너지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전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이 시점에서도 아직 공업화의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모든 공업화란 필연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게 된다.
즉, 쓰레기가 쌓이는 엔트로피의 양이 점점 더 늘어나는 생활양식이 더 심화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냥과 채집의 생활로부터 농업위주의 생활 다음에 온 공업화된 생활로 발달되어 온 인류의 생활양식은 이제 그 극을 향하여 가고있음이 확실하다. 그런데 문제는 한정되어 있는 에너지를 전제로 세워진 공업화라는 과정이 언제인가는 그 끝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에너지가 없는 공업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류들이 이런 공업화의 종말이 필연적으로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유일의 대비는 이에 대하여 아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타조가 땅에 머리를 박음으로서 다가 오고있는 위험을 잊고자하는 자세와 하나도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지나가야 할 점이 있다. 공업화로 만들어진 거의 모든 것들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는 별로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사냥, 채집 및 농업을 통한 생활양식은 생명유지에 절대로 필요한 생활양식이었지만, 공업과 서비스업을 통해서 얻어진 것들은 주로 인간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주거나 인간의 환상적인 욕심을 채워주는 역할을 해 온 것들뿐이지 인간의 생명을 유지시키는데는 별로 필요 없는 것들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인간들의 모든 생리작용은 사냥, 채집 및 농업위주로 된 생활에 익숙해 있었는데 지난 200년 동안에 변해 온 공업화된 생활로부터 온 커다란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인간의 생리작용이 예고 없이 급하게 다가 온 변화에 적응하려면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임에 틀림없다.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의 퇴행성 성인병들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에너지 고갈로 인해 모든 공업의 끝이 오게되는데, 이로 인한 충격은 급격할 것이며 예고 없이 올 것이다. 사냥 및 채집으로부터 농업, 농업으로부터 공업으로의 전이과정은 중복된 부분이 있으면서 상당히 오랜 세월을 두고 슬그머니 이루어졌다. 그러나 공업화된 인간세계의 끝은 비교적 급격하게 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결과가 초래하는 인간들의 생활양식에 올 변화는 급격하면서 심대할 것이다. 또한 이런 과정으로부터 올 정신적인 충격은 가공할 정도이고, 육체적인 노동을 해야 생활을 하게되면서 의식주 생활에 올 변화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가 될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세계적인 인구폭발은 이제 반대방향으로 가면서 인구감소까지 초래하게 되면서 어려운 생활양식을 더 악화시키게 되는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된다. 이 정도의 비극적이고 종말적인 사태가 벌어지면 건강과 장수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기 어려울 정도로 종말적인 세상이 될 것이다.
엔트로피라는 우주운행 법칙의 가장 근본적인 물리학적인 법칙에 대한 공부를 하다보면 저절로 인류의 종말이라는 사건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인류의 종말은 에너지의 종말로서 오게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의해서 오고있는 사태에 대한 개인으로서의 대비책은 무엇인가?
간단하면서 단순한 삶으로부터 얻는 행복을 찾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공업화로 얻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은 인간의 편리와 쾌락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공업화로 발달한 인류문명이 인류를 타락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가 등장한 후 변한 인간들의 생활을 상정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타임 머신인 자동차가 있음으로 해서 인간들은 많은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 쾌락을 위한 시간으로 되지 않았는지?
또한 자동차가 있음으로 해서 인간들은 더 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내게 되었다. 더 멀리 가게 되었고 더 자주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낮은 엔트로피의 생활로부터 높은 엔트로피의 생활로 그 패턴이 바뀌게 된 것이다.
현대인들은 낮은 엔트로피의 생활의 즐거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고 단지 높은 엔트로피의 스피드와 쾌락에만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이래서 육체의 노동을 해야하는 농사는 높은 엔트로피의 생활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생활양식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독서가 그렇고, 글을 쓰는 것이 그렇다. 계획 아래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을 해야 한다.
엔트로피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평소의 생활양식이 필요한 것이다.
엔트로피와 건강 :
현대의학은 현대생활에 관련된 거의 모든 면들이 그렇듯이 뉴턴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그 근저에 있다. 기계적이고 수학적으로 병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인간의 몸도 우주의 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우주가 뉴턴식 이분법으로 운행되고 있다고 믿었듯이, 인간에 대해서도 객관식 관찰과 함께 객관식 치료방법들이 주로 발달되어 온 것이다. 최고로 발달된 각종 수술방법, 하루가 멀다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각종 특효약들, 각종 하이텍 진단기구들은 사람들에게 병을 가져다주는 상대를 찾아내어 이를 박멸함으로 병을 고치는 방법이다.
지난 100여년 동안 써 오고있는 치료방법들이다. 언론들도 이에 편승하여 새로운 수술방법, 각종 특효약 그리고 각종 하이텍 기구들에 대한 보도를 하루도 쉬지 않고 보도하고 있다. 이런 단편적이고 무비판적인 언론의 보도에 접하게 되는 현대인들은 이제 죽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얕은 지식으로만 판단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기도 하다.
의료진들은 전문화되었고 한 의사가 하는 일을 다른 의사는 하지 않는 진료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종합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제도가 정착 되어있다. 즉, 의료의 집중화인 것이다.
제약회사, 의사 그리고 국가의 정책은 약을 복용해야 병이 치료된다는 전제아래 사회적인 공식을 정착시켰기 때문에 이제는 몸에 이상이 생기면, 사람들은 약부터 찾게 되었다.
병을 예방한다는 의식보다는 일단 병에 걸린 후에 이를 다스리겠다는 통념이 사회에 깔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병은 그 병 치료에 필요한 약 부족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고혈압 약이 없어서 고혈압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고혈압 약이란 일단 올라 간 혈압을 낮추는 작용을 할뿐이다.
약이란 예방차원이 아니라 병에 걸린 후 사후차원으로 쓰여지게 만들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이 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병은 예방이 최선책이다.
약 복용하기를 즐겨하는 현대인들! 아무런 생각 없이 약만 복용하면 건강이 유지된다고 믿고있는 현대인들! 약도 선별적으로 쓴다면 얻는 것이 있게 될 것이나 무분별하게 약을 쓸 때는 많은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
이제는 환자 자신들이 의사에게 어떤 약을 처방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로 하이텍에 물든 대중들은 높은 엔트로피 의학을 선호하고 있다.
미국인의 50-80%가 매 24-36 시간마다 약을 복용하고 있고, 미국인들 중 65세 이상 된 사람들은 매일 다섯 가지 이상의 약을 복용한다는 통계도 나와있다. 미국 언론의 광고매체는 약에 대한 광고로 꽉 차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약 광고가 계절에 따라서 사람들 근처에 아주 가까이 와 있는 것이다.
이제 약은 미국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돼는 현대생활의 상징과 유행으로 등장하고 있다.
현대의학의 총아는 아무래도 각종 항생제일 것이다. 페니실린이 나온 이후 수많은 항생제가 나왔다.
페니실린이 처음에 나왔을 때는 거의 모든 병균에 다 잘 들었다. 페니실린 한 가지로 거의 모든 감염증에 대처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병균들은 돌연변이로 무장되어있어 페니실린을 이길 수 있는 효소를 만들어내기 시작하여 이제는 페니실린에 잘 듣는 병균은 거의 없을 정도로 페니실린의 약효로는 웬만한 병균은 꿈쩍도 하지 않게 되었다. 다시 페니실린보다 강한 항생제가 나와서 한 동안은 병균들을 이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페니실린이 통할 때에는 페니실린 한 가지로 거의 모든 병균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새로 나온 항생제들은 좁은 범위의 병균들만 처리할 수 있을 뿐이고 그런 새로 나온 항생제들도 시간이 지나면 병균의 돌연변이로 만들어진 효소를 이기지 못하게 된다. 좀 더 새로운 항생제를 다시 만들어야 하지 않으면 병균과의 싸움에서 지게된 것이다.
병균과 항생제의 싸움은 점점 더 확대되어 이제는 아주 최신의 항생제가 아니면, 병균들에게 생긴 내성으로 별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된 상태로 되었다.
병균과 항생제의 전쟁에서 병균이 질 것이라는 조짐은 조금도 없어 보인다
엔트로피 개념을 도입한 현대의 의료제도에 대한 이해
현대의 하이텍 의학은 엔트로피가 높은 의학인 반면에 병을 예방한다는 차원은 낮은 엔트로피의 의학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높은 엔트로피는 부가가치가 적은 반면에 엔트로피가 낮은 경우에는 부가가치가 높아진다.(여기서의 부가가치는 상업적인 이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의 부가가치를 의미한다)
그렇다고 높은 엔트로피의 현대의학이 다 잘못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수술은 생명을 건진다. 하이텍 진단기구들로 인해 전에는 알기 힘들었던 병리작용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약도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임으로 잘 쓸 때에는 생명을 건지게 된다.
그러나 이런 현대식 의료행위는 모두가 사후대책을 위한 것들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건강을 되찾는다는 조처가 아니라 병을 고친다는 뜻이 더 강하다. 건강을 유지한다는 뜻과 병을 고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병을 고친 후에도 아직 건강하지 않을 수 있다.
건강한 몸에는 병이 찾아오지 않는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현대의학에 의한 병 고침 받기를 원하든지 아니면, 평소에 건강을 유지하여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인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그런데 문제는 건강을 유지하는 길을 바로 질러서 가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멀고 먼 길을 차근차근하게 걸어가야 하는 길이 일생동안 좋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즉 낮은 엔트로피의 예방의학 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