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태평농법

[스크랩] 자연인 최성현 농부의 삶

풀과나무산 2016. 6. 24. 17:10
자연인 최성현 농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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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현 씨는 18년째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깊은 산속에서 홀로 산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굽이굽이 숲길을 한참 걸어야 나오는 작은 토담집에서 산다. 그의 집엔 울도 담도 없다. 가까운 이웃집도 없다. 전기와 전화는 들어오지만 TV는 없다. 목욕탕과 수세식 화장실도 없다. 명색이 농부인데 번듯한 농기계도 없다.

세상 사람들 눈으로 보기엔 없는 것투성이다. 하지만 그에겐 자신이 풍부하게 누리는 온갖 좋은 것들을 알아보는 밝은 눈이 있다. 결핍과 풍요는 결국 우리네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이 어디인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는 것을 그는 산에서 혼자 농사지으며 터득했다.

최성현(51) 씨가 충북 제천 천등산 박달재 근처 산으로 들어온 지 올해로 18년째. 동국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교로 있던 어느 날, 홀연히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왔다. 인생을 갑자기 바꿔버린 결정적 계기는 한 권의 책과의 만남이었다.

“자연농법의 창시자인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이라는 책을 읽고 오래 감겨져 있던 눈이 번쩍 뜨이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가 말하는 자연농법이야말로 바람직한 삶이며, 생활이 곧 수행이고 큰 배움의 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인생 바꾼 한 권의 책 … 자연농법 실천

제천시 백운면에 있는 경은사라는 절 뒷산에 가면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끝나는 곳에 두 노인 내외가 사는 작은 집이 있는데 그곳이 명당자리라고 누군가 귀띔해줬다. 가보니 마침 노부부는 오랜 산 생활을 접고 마을로 내려가고 싶어하던 참이었다. 찾아간 그날로 계약을 하고, 다음 날 짐을 꾸려 이사 온 것이 방 두 칸에 부엌 한 칸, 작은 툇마루가 딸린 이 집이다.

최 씨는 땅을 갈지 않고,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으며, 김매기를 하지 않는다는 네 가지 원칙을 지키는 자연농법 농사를 시작했다. 처음 5년간은 온갖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자연과의 소통은 천천히,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힘들게 익혀지는 것이었다. 자연농법의 선구자들이 이미 실천한 길이므로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긴긴 실험의 날들을 버티다 보니 호박, 상추, 오이 같은 ‘쉬운 작물’부터 하나 둘씩 자리가 잡혔다.

“이 생활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자연 속에서 하나가 되는 체험이 주는 놀라운 행복을 알게 된 건 한 10년 지나서였습니다. 하하, 제가 좀 더딘 사람이라서요.”

손바닥만한 텃밭이라도 가꿔본 사람이라면 농사가 다름 아닌 잡초와의 전쟁이라는 걸 알 것이다. 최 씨를 비롯한 자연농법 농부들은 “잡초는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의 힘으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더불어 사는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1년에 한 가마 조금 넘는 수확을 올리는 그의 논에는 저절로 자란 돌미나리밭이 있고, 배추·고추·가지를 가꾸는 밭에는 날로 무치거나 고추장에 비벼 바로 밥상에 반찬으로 올리는 야생초들이 수북이 자라 있다.

   (계속)

[커버스토리|‘新행복론’, 대안적 삶을 찾아서]

“허허~ 풀과 벌레와 함께 농사짓지요”
천등산 박달재 ‘바보 이반 농장’ 주인 최성현 씨
 

벌레도 그에게는 사이좋게 살아가는 친구다. 그는 아예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위한 배추밭을 따로 만들었다. 어느 해부터인가 산토끼도 자주 와서 배춧잎을 뭉텅뭉텅 잘라먹고 간다. 그는 “배추흰나비 애벌레는 덩치가 워낙 작아서, 산토끼는 배추 말고도 먹을 것이 많아서 괜찮다”고 말한다. 애벌레와 산토끼가 먹다 말아서 입자국이 남아 있는 배춧잎을 물에 씻고 소금에 절여 김장을 담그면 된다는 것이다.

“자연농법에서 많이 인용되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콩 세 알을 심을 때 한 알은 새를 위해, 한 알은 벌레를 위해, 나머지 한 알은 사람을 위해 심는다고요. 농약이나 총으로 벌레와 동물을 막지 않고 나둬도 사람 몫으로 3분의 1은 돌아옵니다.” 최 씨는 세 알 중 두 알은 흔쾌히 나눠주고 한 알에 만족하라고 권한다. 벌레만 죽이고 동물만 해치고 사람에게는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는 농업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잡초를 뿌리뽑겠다고, 벌레를 소탕하겠다고, 동물을 멀리 쫓겠다고 인간들이 고안해낸 모든 폭력은 결국 고스란히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게 자연의 섭리라고 그는 말한다.

요즘 최 씨의 하루는 곧 다가올 긴 겨울을 준비하느라, 많이 짧아진 하루 해가 빠듯하다. 곧 밤을 딸 철이므로 밤나무 아래의 풀을 베고, 고추를 따서 햇볕에 말리고, 내년에 뿌릴 씨앗을 받아둬야 한다. 가을엔 틈나는 대로 겨울용 푸성귀를 건조시켜 보관해둔다. 9월과 10월에 열리는 호박, 가지 중 먹고 남은 것을 썰어 말리는데, ‘습기는 없으나 눌러도 잘 부서지지 않는 상태’로 수분을 적당히 없애야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산이 깊어 살아 있는 나무를 베지 않고 죽은 나무만 잘라와도 땔감은 충분하다.

나무를 구해 땔감을 손질할 때 그는 기계톱이 아닌 손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지게로 져서 집 근처로 날라다가 틈틈이 도끼질을 한다. 기계를 쓰면 속도가 훨씬 빠르겠지만 그는 새 소리,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일할 수 있는 수동 도구를 택한다. 일터에서 집까지의 좁고 비탈진 산길을 지게 지고 걷자면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걷는 데만 집중해야 한다. 명상이 따로 없다. 온몸에 땀이 흐르고 땀과 함께 복잡한 머릿속 찌꺼기가 빠져나가 마음도 몸도 개운하다.

마음과 몸을 상쾌하게 씻어주는 육체노동이 있는 삶. 한 포기 풀에서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벌레 한 마리에게서 우주의 진리를 배우는 삶. 시골로 올 때 꿈꾸었던 ‘농사가 곧 공부로 이어지는 나날, 죽는 날까지 딱딱해지지 않도록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에게까지 늘 고개 숙이고 사는 삶’을 이루어서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인간이 고안한 폭력 결국 인간에게 돌아와

그의 소박한 밥상.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사는 곳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는 것이라는 사실을 어느 날 알게 됐습니다. 같은 길도 눈여겨보면 늘 새롭고, 귀 기울이면 자연은 온통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풀과 벌레가 평화롭고 아름답게 함께 사는 논과 밭에 그는 ‘바보 이반 농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톨스토이의 중편소설 ‘바보 이반’에서 이반의 벙어리 여동생은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힌 사람에게만 새로 지은 밥을 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먹다 남은 밥을 준다. 거친 손으로 꼭 필요한 일을 부지런히 하는 이들이 부끄러워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꿈꾸는 마음에서다. 사람이 곧 한울(神 혹은 天)임도 톨스토이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만물 속에서, 살아 있는 것은 물론 바위나 공기, 바람이나 물 속에서 신을, 한울님을 뵙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산다”는 최 씨는 이날 취재 일행으로 ‘변장’하고 들른 한울님들을 멀리까지 전송해줬다. 포장도로까지는 온몸이 촉촉하게 땀에 젖을 만큼 걸어야 하는 이 길을 그는 오래오래 차가 아니라 발로 걸어서 다니길 바란다고 했다.

“맨몸이라야 쓸데없는 것을 덜 갖고 들어오기 때문이죠. 나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 두고 오지 못한 마음을 그 길에 두고 갈 수 있습니다.”

다 버리고 버려서 얻게 되는 더 큰 세계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얘기였다.   (끝)

 

 

 

 

 

자연농법 20년…박달재 ‘바보 이반 농장’ 최성현씨

 

경향신문 2006.8.29



최성현씨를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자연을 맞이해야 한다. 그의 집을 찾아가는 천등산 박달재 인근 산 길. 수많은 새소리, 계곡물의 울림을 들어야 한다. 길까지 차지한 풀과 하늘 가린 나무를 봐야 한다. 산 속 푸른 기운을 온 몸으로 느껴야 한다. 등짝에 땀이 주르르 흘러 내리고, 갈림길에서 이 길인가, 저 길일까 몇번 고민해야 그의 집을 만난다.

지난 21일 그를 찾았다. 모두가 천재를 원하고, 잘났다고 목청 높이는 세상에 “바보 이반이 가장 좋고, 바보 이반이 사는 바보들의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그를 만나기 위해서다. 몇번의 땀을 훔쳐내니 큰 밤나무들에 둘러싸인 흙집이 나타났다. 방 2칸에 부엌 하나, 좁은 툇마루. 창고도 있고, 비록 삐걱거리긴 하지만 정자도 있다. 태양열로 전기를 만들었지만 TV나 냉장고는 없다. 하지만 산과 계곡, 나무와 풀들이 정원이다. 마침 점심때인지라 그가 상을 차려온다. 콩과 현미·야생초를 섞어 지은 밥에 마당가에서 뜯은 씀바귀순과 오이·풋고추·된장이 주 반찬이다. 최근 그가 출간한 ‘산에서 살다’(조화로운 삶)를 꺼내며 수년은 사용한 듯한 나무젓가락을 드는 그에게 이야기를 붙였다.

-1988년에 이곳에 내려왔다고 하는데 왜 내려온 것입니까.

“별 것 없습니다. 도시에선 내가 잘 살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서죠. (진짜 이유를 꼬치꼬치 캐묻자) 철학과 종교 공부를 하면 현인, 현자가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굳어진 틀의 학계 안에서보다는 바깥에서 뭔가를 찾아보았죠. 그때 후쿠오카 마사노부 선생의 자연농법을 만났고, ‘이거다’ 생각했습니다. 자연농법을 직접 실천하고 싶었지요. 여기 원주민들인 풀과 벌레, 나무 등 살아있는 모든 것과 사이좋게 사는 것이 자연농법의 주제입니다. 이들을 해치지 않고 공존하면서, 자급자족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책이 아닌 길에서 공부를 하고파 책은 다 놔두고 내려왔습니다.”

-도시 삶에 비해 뭐가 그리 좋은가요.

“도시를 떠난 지 오래돼 비교가 잘 안됩니다. 내가 먹을 것은 내 스스로 길러 먹는다는 자급자족의 즐거움이 아주 큽니다. 나를 찾아오는 새와 벌레, 풀과 나무, 짐승을 만나는 재미도 있습니다. 또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만나는 것도 즐겁습니다.”

-산 속의 작은 농사로 자급자족이 되나요.

“먹고 사는 것은 그리 큰 일이 아닙니다. 욕심을 버리면 되지요. 오히려 나 혼자 먹고 남아 선물도 합니다. 찬거리도 주변에 많습니다. 쇠별꽃, 달래와 냉이, 꽃다지, 개망초, 질경이와 쑥, 돌미나리, 산나물, 회잎나무 순…. 전업농을 꿈꿨지만 지금은 농사일과 함께 번역과 글쓰기도 합니다. 뽕나무의 오디로 발효시킨 오디음료를 판매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많은 일을 하는 셈이죠. 후쿠오카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의 일생이란 이슬과 비를 피할 수 있는 오두막에 살며, 한 벌의 옷과 한 벌의 밥그릇, 그리고 지팡이 하나로 충분하다고.”

-들어오는 길에 ‘바보 이반 농장’이란 팻말을 봤습니다. 왜 하필 바보 이반인가요.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은 내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지금도 자주 읽고, 그 뜻을 알기 위해 문장을 외우기도 합니다. 속이지 않는 삶, 욕심없는 삶, 서로 어울려 사는, 순수함 그 자체의 세상이 이반이 사는 세상 아닌가요. 이반의 나라는 손바닥에 굳은 살이 박혔으면 새로 지은 밥을 먹지만, 그렇지 않으면 먹다 남은 밥을 줍니다. ‘손보다 머리로 일하는 편이 이롭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 땀흘린 만큼 갖지 않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이 무시당하는 나라입니다. 내가 사는 곳이 그런 세상이었으면, 내가 바보 이반이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애쓴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요.

“애쓰려고 노력한다는 말이 맞습니다. 우선 나는 이곳의 주인인 땅, 풀, 벌레, 나무 등과 평화롭게 살기를 공부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스승이지요. 방문객들과도 이런 내 생각을 나누려고 합니다. 물론 번번이 내가 손님들에게서 많이 배우지만…. 둘째는 손님을 한울님(신)으로 보기를 꿈꿉니다. 만나는 사람을 하늘의 선물이라고 여기려 합니다. 눈여겨 보고, 귀 기울여 들으려고 애씁니다. 해월 최시형 선생도 ‘사람이 바로 한울이니 사람 섬기기를 한울같이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이를 제대로 해낼 수 있다면 세상에도 도움될 것이라 믿습니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이뤄지나요.

“아침 4~5시에 일어납니다. 씻고, 절하기를 합니다(절하기를 구체적으로 물었으나 비밀이란다). 집 안팎을 둘러보고, 해뜨기 전에 논밭일을 합니다(해가 뜨면 더우니까). 오전 11시쯤 아침 겸 점심을 먹지요. 하루 두끼만 합니다. 이후엔 번역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봅니다. 방문객을 맞기도 하고. 오후 6시쯤에 저녁을 먹습니다. 밤중에는 좋아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논에 나가 풀벌레 소리 듣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입니다.”

-자연과의 공생이라는 자연농법의 뜻은 좋지만 현실적으로 모두가 자연농법으로 먹고 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맞는 말입니다. 자연농법은 인간이 먹기 위해서 생물과 물·흙·공기를 파괴하지 않는, 인간과 생물이 서로 건강한 방식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늘 심적 부담으로 다가오죠. 그래서 자연농법 정신이라도 새겼으면 합니다. 다행히도 요즘은 인간과 생물 모두의 건강함을 지키는 농사, 먹거리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나처럼 모두 농사를 지을 순 없지만 그 정신은 가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 주신다면.

“철저한 준비 등을 다들 알고 있는데 뭐 필요한 게 있나요. 다만 나는 수행하는 삶, 그런 자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틈나는 대로 모든 사물을 통해 배움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울지 모르지만 지식인으로서 우리 사회를 위해 더 큰 일을 도시 속에서 할 수 있지 않나요.

“나는 깊은 산 속의 풀 한포기가 수행 오래한 성직자나 유명 학자처럼 깨우침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삶을 원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더 나은 우리 사회를 위한 길이 되지 않을까요. 도시 속 삶도 아주 소중합니다. 나는 지금 내가 살고있는 이 자리를 건강하게 가꾸면서 치열하게 산다면 그것도 어떤 일 못지않은 큰 일이라고 봅니다.”

-꿈이나 소망이 있다면.

“어느 겨울날 눈 쌓인 숲속을 걷다가 덤불 속을 날아다니는 박새를 봤습니다. 조그만 박새를 보는 순간 ‘이것으로 삶은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자’의 첫 머리에 나오는 대붕을 반드시 꿈꿀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박새도, 이름 모를 풀같은 삶도 충분치 않을까요. 마음의 평화로움을 느끼고, 주변 모든 것과 화목하게 사는 것, 누굴 만나든 그를 섬기고 나를 낮출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싶습니다. 고요한 마음, 단출한 삶, 이웃과의 조화로운 삶이면 족합니다.”

-나름대로 지역 환경운동 등에도 참여하는 것으로 아는데, 현재의 환경·생태운동을 어떻게 보시나요.

“내가 앞장 서고 한몫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어 늘 미안합니다. 책에도 썼지만 환경문제는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모두가 공범입니다. 모두가 적을 만드는 고발보다 친구를 만드는 고백을 하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미래세대인 어린이들에게 기대를 걸어 환경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게 최우선인 것 같습니다.”

-최근 이 지역도 제천시에서 개발한다고 해 지역주민들이 대책위원회까지 꾸려 반대운동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기업이 이 지역에 콘도, 호텔 등을 짓는다고 합니다. 왜 이 청정지역을 개발하려고만 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앞으론 이 청정한 자연이 오히려 더 큰 가치를 지닙니다. 주민들이 힘을 모아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지요. 지역개발은 지역민들의 자발적 토론을 거쳐 이뤄져야 합니다.”

-한 20년 산에 살면서 공부한 것은 무엇입니까.

“뭐 특별한 게 있나요. 말을 적게 하고, 대신 많은 말을 귀기울여 듣는 자세면 충분하지요. 하루 1시간이라도 자신의 내면의 때를 씻는, 내면을 관조하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잘 안되지만, 아무리 바쁘더라도 되새기는 시간을 가지면 충실한, 후회하지 않는 삶을 꾸릴 수 있지 않을까요.”

◇ 최성현씨는

최성현씨(51)는 20년 가까이 산에서 혼자 살고 있다. 30대에 도시생활을 접고 충북 제천의 천등산 박달재 인근으로 내려왔다. 자연농법의 창시자인 일본의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책을 읽고 세상 모든 생물과 공존하는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주변 생물을 해치지 않는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자신의 먹거리를 해결한다. 산기슭에 마련된 조그마한 밭과 논을 그는 ‘바보 이반 농장’이라 부른다. 톨스토이의 소설 ‘바보 이반’에서 따왔다. 바보 이반이 사는 세상을 그는 꿈꾼다.

농사일을 하면서 책도 쓰고, 번역도 하고, 가끔은 자연농업 등에 관한 강연도 한다. 동국대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했고,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연구 조교생활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 ‘좁쌀 한 알’이 있고 ‘생명의 농업’(공역),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 ‘여기에 사는 즐거움’ 등을 번역했다.

〈박달재(제천)|글 도재기·사진 이상훈 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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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벽화 그리기
글쓴이 : 박천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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