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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남알프스의 우마고도-긴등재

풀과나무산 2012. 6. 8. 11:15

 

   

상북 들판에서 바라본 천화현의 긴 산등.

 

- 천황산~부로산 잇는 긴 산등 천화현
- 울창한 숲 불질러 하늘 뚫었단 유래

- 동짓날 가마타고 긴등재넘은 새색시
- 가마꾼들 눈 밟던 소리 92세에도 생생

- 장꾼들 언양가던 통로 '오두매기'
- 옛 소장수, 먼 길 갈때 소에 짚신 신겨
- 숨넘어갈듯 가파른길 함께 걸어

■ 기상 높은 영남알프스의 지붕 '천화현'

   
영남알프스 지붕을 이고 사는 상북 고을 사람들이 뿔이 났다. 상북 들판에 트랙터와 경운기를 몰고 나와 시위를 벌인 상북인들은 "세워두고 눈 빼 먹는 세상"이라며 멍석말이 분통을 터트렸다. 얼굴에는 한겨울 추위가 걷히지 않았고, 걸쭉한 방언에는 울음기가 섞여 있었다. 지역 발전을 믿고 고래 논을 농공단지에 내어주었지만, 땅만 편입시키고 약속을 저버렸다며 울분을 터트렸다.

마침 떠돌이 시인은 영남알프스의 지붕인 천화현(穿火峴)에서 이 날의 시위를 지켜보았다. 기름진 상북 들판을 병풍처럼 에워싼 천화현은 밀양 천황산에서 배내봉 남동쪽 부로산까지 이어진 길고 긴 산등을 말한다. 남쪽으로는 간월산, 서쪽으로는 능동산과 천황산 사자평(獅子坪), 북쪽으로 오두산, 동쪽으로는 밝얼산이 뻗었다.

천화현은 울창한 숲에 가려져 하늘이 보이지 않아 불을 질러 하늘을 뚫었다는 유래를 간직하고 있다. '뚫어서 통하게 한다'는 천(穿)의 의미가 불뫼(火山)와 연결된 것이다. 간월산 불등, 신불산 칼등, 천황산 사자등, 능동산 얼음등의 아찔한 벼랑은 마치 불에 댄 공룡이 꿈틀거리는 형상을 하고 있어 영남알프스의 불등(火登)과도 같다. 과거에는 밀양 얼음골 산내면을 천화면이라 불렀고, 신불산 아래에는 '천화'를 거꾸로 읽은 '화천'마을과 이불이라는 '지화'마을이 있다. 요즘에는 영남알프스의 새로운 로드명인 '하늘억새길' 4-5구간에 걸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 꽃가마 갈아타던 '긴등'

   
낙엽 융단 깔린 긴등재. 1000m에 가까운 배내봉에서 꽃가마가 넘어왔던 옛길이다.
떠돌이 시인은 꽃가마를 타고 천화현을 넘어온 박정순(92세) 할머니를 알고 있었다. 박 할머니가 계신 곳은 산중의 요양원. 경운기 사고로 육신은 망가졌지만 정신만은 새댁 못지않았다. "동짓달 눈이 오는 날이었어요. 배내골 가매(가마)를 타고 배내봉에 올라가니 상북 가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줌 누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여물을 깐 놋요강을 조심스럽게 상북 가매로 옮기려니 얼마나 부끄럽던지…." 열일곱 살에 시집올 당시의 두근거림이 고스란히 살아나는지 깻잎처럼 작은 박 할머니 얼굴에는 수줍음이 흘렀다.

신부가 탄 가마가 태산을 어떻게 넘었을까 싶지만 정해진 혼사는 악천후에도 이루어졌다. "하늘만디에서 가매를 갈아타고 내려오는데 어지러워 눈을 감고 있었어요." 가마꾼들의 눈 밟던 소리를 잊지 못해 하는 박 할머니는 "가매 탄 새댁을 구경하려고 동네 사람들이 설거지를 하다 말고 뛰어나오더라"며 웃었다.

마을 아낙들과 어울려 순정만디에 나물을 캐러 다니던 시절도 떠올렸다. "'정아정도령' 바위 앞을 지나갈 때는 나물을 많이 캐게 해달라고 꼭 인사를 드렸어요." 삼베 밥 수건에 싼 주먹밥과 산에서 캔 산부추, 곤달비, 반달비, 꼬망추 참나물을 '참새미' 물가에 둘러앉아 쌈 싸먹던 시절을 잊지 못해 하는 박 할머니는 "죽기 전에 달고 시원한 '참새미' 물 한 모금 마시고 싶다"고 했다.

떠돌이 필자는 박 할머니가 꽃가마를 타고 내려왔다는 긴등재로 향했다. 천화현의 중심축인 배내봉(966m)에서 하나의 등이 남북으로 오뉴월 엿가락처럼 길게 뻗었다 하여 긴등(長登)이라 불렀는데, 봉화대가 있는 언양 부로산까지 이어지는 긴 산등이다. 과거부터 배내오재(梨川五嶺) 중의 두 번째 재(嶺)로 알려져 있다.

낙엽 융단을 깔아놓아 푹신푹신한 긴등 길은 꽃가마가 다니기에 충분해 보였다. 폭은 1~2m였고, 길바닥의 돌을 빼낸 황톳길이 대부분이었다. 큰비로 길이 쓸려갈 때마다 길바닥의 돌을 빼는 부역은 마을 사람들 몫이었을 것이다. 순정마을에서 밝얼산을 지나 배내봉으로 이어진 긴등재는 예상보다 멀고 길었다.

못다 한 사랑을 그리다가 바위가 된 '정아정도령' 바위는 순정마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밝얼산에 있었다. 밝얼산(738m)은 동쪽에서 뜨는 밝은 해를 일찍 받아들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이좋게 붙은 한 쌍의 바위 중에서 작은 바위는 정아바위이고, 큰 바위는 정도령 바위였다. 그러나 나물 캐던 아낙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던 '참새미'를 찾기란 넓은 산에서 바늘 찾기나 마찬가지여서 달고 시원한 물을 박 할머니에게 구해 드릴 수가 없었다.

■ 영남알프스의 우마고도 '오두매기'

천화현을 오르는 또 다른 옛길이 '오두매기'이다. '오두매기'는 거리오담(간창, 거리 하동, 지곡, 대문동, 방갓)에서 오두산(824m) 기슭을 감고 돌아 장구만디(배내고개)를 잇는 꼬불꼬불한 고갯길이다. 상북 고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밀양과 원동에서 물목을 거두어들인 보부상이나 장꾼들이 큰 장이 서는 언양으로 가던 주요 통로였다. 최근에는 장구만디에서 배내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에 팻말이 세워져 찾기가 한결 쉬워졌다.

떠돌이 시인의 이번 유랑에는 언양 소 장수 출신인 김정두(86세) 씨가 채꾼(길잡이)이 되어 주었다. 김 씨는 떠돌이 선배답게 목청 좋고 내로라하는 거간꾼이었다.

밀양, 원동, 경주, 청도 등 영남알프스 일대의 산간 오지마을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사들인 소를 몰고 '오두매기'를 넘었던 김 씨는 어릴 때부터 동네 뒷산에서 소와 함께 단련된 사람이었다. "일등 소는 소털이 윤기가 나고 뼈대가 좋아. 맨눈으로 보기 좋은 소가 육질도 좋다" 며 소 가리는 법을 특유의 걸쭉한 방언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오두매기'는 듣던 대로 숨이 넘어갈 만큼 가팔랐다. 이토록 험한 산길을 소를 몰고 어떻게 넘었을까? 김 씨는 "소 갈 데 말 갈 데 따로 있나? 길이 있으니 가는 거지"라고 잘라 말했다. "산짐승 울어대는 야밤에 천황산 사자평을 지나오던 기억이 난다." 김 씨는 소떼를 몰고 가다 맹수를 만났던 긴박했던 상황을 털어놓기도 했다. "겁이 많은 소는 산짐승이 나타나면 발굽을 떼지 않으려 한다. 아무리 뚝심 좋은 장꾼이라도 그럴 때는 긴장한다. 한 사람은 횃불을 들고 짐승을 쫓고, 다른 한 사람은 가죽 채를 들고 채근을 했다"고 말했다. 폭설이 내릴 때는 소의 코에 굴레를 끼워 가죽 채를 내리쳤고, 멀리 갈 때는 소에게 짚신을 신겨 들메끈을 쪼았다. "그래도 사람보다 소가 잘 걷는 편"이라는 김 씨는 구름처럼 떠돌던 시절을 마냥 그리워했다.

영남알프스의 우마고도(牛馬高道)로 알려진 '긴등재'는 시공여행의 통로이다. 청 이끼 낀 옛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소를 몰고 오는 우직한 장꾼을, 철쭉 만발한 하늘만디에서 색시가 탄 꽃가마를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기행시인 배성동
출처 : 영남알프스 사랑 시민모임
글쓴이 : 관리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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